[레12:5, 새번역] 딸을 낳으면, 그 여자는 두 주일 동안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하다. 피로 더럽게 된 몸이 깨끗하게 될 때까지, 산모는 육십육 일 동안을 집 안에 줄곧 머물러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축복받을 일이며, 또한 숭고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레위기 12장의 말씀은 이해하기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부정하다고 말하며 바깥 외출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아이의 출생에 있어서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시127:3, 새번역]
성경 역시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상급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 역시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말씀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산모의 경우에는 지금도 아이를 낳으면 몸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약 3주 정도는 쉬어야 합니다.
산후조리원같은 곳에서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도움을 받으며 그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은 산모를 보호하는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생의 개념이 온전하지 못한 고대사회에서 이러한 격리는 배려와 보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격리의 기간이 남자아이를 출산했을 경우 33일인 반면, 여자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66일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차별하신 것일까요?
이 역시 배려와 보호로 해석한다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대사회는 남아선호가 분명했을 것입니다. 남자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는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 남자는 집안의 일꾼이었고, 대를 이어가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랬다면 여자아이의 출산은 축복을 받기 보단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쩌면 두 배의 시간을 산모에게 주어,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질 때 쯤 사회 활동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격리의 시간은 쉼과 보호 그리고 배려의 시간을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번제와 속죄제를 바칠 때에도 그러한 하나님의 배려를 보게 됩니다.
그 여자가 양 한 마리를 바칠 형편이 못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바쳐도 된다. 그리하여 제사장이 그 산모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 여자는 정결하게 될 것이다.”
[레12:8, 새번역]
가난한 산모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죠.
우리 하나님이야 말로 진정한 배려의 아이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