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33, 새번역]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민수기 13장은 이스라엘이 정탐군들을 가나안땅에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고 보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나온 것은 단순히 노예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한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땅에 들어가 정착하여 사는 것이었습니다.
탈출보다 중요한 것은 약속된 땅에서의 정착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의 말씀의 핵심은 떠나감(이집트로부터)과 나아감(약속의 땅으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앞서서 모세는 12정탐군을 세웠습니다. 그 중 우리가 잘아는 여호수아와 갈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정탐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의 좋고 나쁨, 그 땅의 백성이 강하거나 약한 것과는 관계없이 이스라엘은 나아가야 했습니다.
땅을 정복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식민지를 삼고 제국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탐을 보고한 내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곳은 분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견고한 요세였고, 그곳 사람들은 거인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들의 ‘보기에는’ 정복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들은 거인이었고(네피림은 거인족인데, 창세기 홍수이전에 등장할 뿐이었습니다. 두려움의 핑계였습니다.)
그들 자신 스스로를 ‘보기에는’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또 그들이 자신들을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주눅들기도 하고, 자신감을 갖게도 합니다.
보이는 것이 우리의 삶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한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24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로마서 8:24-25, 새번역]
25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메뚜기 같아보이고 그들이 거인같아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엔 다 개미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거인보다 크시고, 메뚜기 같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커도 패배할 수 있으며, 우리가 아무리 작아도 승리하게 하시는 분
그 분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시며 영원한 승리자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로마서 8:31,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