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람, 돌이키는 사람 — 역대하 19장 2026년 8월 25일 (화) 헤븐인교회 새벽예배 더원메시지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눕니다.
돌아온 사람, 돌이키는 사람
1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궁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때에, 2 하나니의 아들 예후 선견자가 나가서, 왕을 찾아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악한 자를 돕고 주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임금님께서 그렇게 하셨으므로 주님의 진노가 임금님께 내릴 것입니다. 3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선한 일도 하셨습니다. 아세라 목상을 이 땅에서 없애 버리시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 찾는 일에 쏟으신 일도 있으십니다.” 4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간지역에 이르기까지 민정을 살피러 다녔으며, 백성들을 주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다. 5 그는 또 온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에 재판관들을 임명하여 세우고, 6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맡은 일을 할 때에 삼가 조심하여 하시오. 그대들이 하는 재판은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재판할 때에 그대들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시오. 7 주님을 두려워하는 일이 한 순간이라도 그대들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시오.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도 않으시며, 치우침도 없으시며, 뇌물을 받지도 않으시니, 재판할 때에 삼가 조심하여 하도록 하시오.” 8 이 밖에 예루살렘에서도 여호사밧이 레위인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가문의 족장들 가운데서 사람을 뽑아 재판관으로 임명하여, 주님의 법을 어긴 경우를 포함하여,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주민의 송사를 재판하게 하였다. 9 그는 재판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대들은 이 일을,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하여 수행해야 하오. 10 어느 성읍에서든지, 동포가 사람을 죽이거나, 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를 어겨서 재판관들에게 송사를 제기해 오면, 재판관들은 그들에게 경고하여 주님께 범죄하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진노가 그대들 재판관들 그대들의 동포에게 내릴 것이오. 내가 시킨 대로 하면, 그대들에게 죄가 없을 것이오. 11 주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문제는, 아마랴 대제사장이 최종 권위를 가지고 결정을 내릴 것이며, 왕에게 속한 모든 문제에 관련된 것은, 유다 지파의 우두머리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최종 권위를 가지고 결정을 내릴 것이오. 레위 사람들은 법정에서 결정된 사항들이 실행되는 것을 감독하는 관리의 책임을 질 것이오. 용기를 내어 이 모든 지시를 잘 실행하시오. 주님께서는 공의를 이루는 사람들의 편을 드신다는 것을 명심하시오.”(역대하 19장, 새번역)

열왕기는 아합의 죽음에서 이야기를 끝냈지만, 역대기는 여호사밧의 귀환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돌아온 사람은 돌이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대표 구절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간지역에 이르기까지 민정을 살피러 다녔으며, 백성들을 주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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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 가지 질문
열왕기가 멈춘 자리에서, 역대기는 다시 시작합니다 (19:1)
18장은 열왕기상 22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장이었습니다. 미가야 예언자의 이야기, 변장한 아합이 무심코 당긴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까지 두 책에 거의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아합이 죽었고 그 피를 개가 핥았다”는 처참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접고, 곧바로 다음 왕에게로 넘어갑니다.
역대기는 다릅니다. 아합의 그 참혹한 최후를 아예 적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역대하 19장은 열왕기 어디에도 없는, 오직 역대기만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합의 죽음이 아니라 여호사밧의 귀환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역대기 기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입니다.
공로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19:1, 참조 18:31)
여호사밧은 궁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가 옳았기 때문이라고 읽으면 안 됩니다. 시리아의 병거대 지휘관들이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오해하고 몰려들었을 때, 그는 회개한 것도 기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기겁하여 소리를 질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열왕기상 22장에는 없는, 역대기가 일부러 덧붙인 말씀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여호사밧이 살아난 이유를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가 소리쳤고 주님이 그것을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기억해야 할 것도 이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책망하시지만, 기억하십니다 (19:2-3)
예후 선견자는 먼저 책망합니다. “편을 든다”는 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 조약과 동맹을 맺을 때 쓰던 공식 용어입니다. 여호사밧은 아합 집안과 혼인으로, 전쟁으로 얽혔습니다. 오십 년 넘게 갈라져 싸운 남과 북이 화해하고 손을 잡는 것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동맹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합이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한 것, 그 자체가 죄였습니다.
그러나 예후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선한 일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죄를 축소하지 않으셨지만, 진노만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의 지난 삶에서 좋았던 것도 함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어리석음이 있지만, 주를 위해 애쓰고 눈물 흘린 시간을 주님은 분명히 기억해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공로가 될 수는 없지만, 주님이 기억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돌아온 사람은 돌이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9:4-11)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면서”라는 말은, 그가 다시는 북쪽으로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합의 궁으로 가지 않았고, 북쪽과 연합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백성 가운데로 갔습니다. 사람을 보내지 않고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간지역까지 직접 두루 다니며 민정을 살폈습니다.
여기서 “돌아오게 하였다”는 히브리어로 “슈브”입니다. 1절에서 여호사밧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할 때 쓰인 것과 같은 동사입니다. 돌아온 사람이, 이제 백성을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그는 재판관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전합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도 않으시며, 치우침도 없으시며, 뇌물을 받지도 않으시니.” 그분을 대리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대리하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 복음 연결 — 소리치는 자를 들으시는 하나님
19장 11절은 그 구원의 그림을 한 번 더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은 아마랴 대제사장이, 왕에게 속한 일은 유다 지파의 으뜸 스바댜가 각각 최종 권위를 가졌습니다. 제사장과 통치자의 자리가 나뉘어 있던 그 땅에, 마침내 온전한 대제사장이며 온전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서시고, 우리를 다스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열왕기가 아합의 죽음에서 이야기를 끝냈지만 역대기가 여호사밧의 귀환에서 다시 시작했듯이, 우리의 이야기도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 오늘의 적용
- 은혜를 인정하기 — 내가 살아있고 여기까지 온 것이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오늘 인정합니다.
- 책망과 기억하심을 함께 보기 — 하나님이 내 삶에서 책망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동시에 기억하시는 선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 돌이키기 — 돌아온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오늘 내가 삶의 자리에서 돌이켜야 할 것 한 가지를 정합니다.
🙏 마무리 권면
오늘도 용기를 내어, 힘을 내어 주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사밧의 마지막 말처럼, 오늘도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주님께서 맡겨 주신 선한 일들을 잘 행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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