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서 아둘람으로
모인 사람들 – 400명 (압제 받는, 빚에 시달리는, 원통, 억울)
[사무엘상 22:2, 새번역]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쓸모없는 이들로 보이지만 다윗의 통치아래 좋은 군인이 된다.
동굴의 의미는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무덤과 같은 의미
다윗의 왕국이 무덤에서 시작 → 예수 그리스도도 무덤에서 시작했다.
“점점 평안을 알아가는 사람이고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이고 놀랍게도 새로운 소망과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는 사람들”
기독론적 해석 : 우리도 아둘람에 모여 있는 사람들 같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군대가 된다.
시편 57편 : 사울을 피하여서 동굴로 도망하렸을 때에 지은 시.
[시편 57:1-2, 새번역]
1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2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나를 위하여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시편 57:7-8, 새번역]
7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8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모압
하나님의 뜻을 알 때까지, 부모들의 피난처
제사장들의 죽음
사울의 불안과 분노
사울은 다윗이 국내로 돌아오자 내면의 불안 심리가 들끓게 되었으며, 그의 불안은 구체적인 사안이 아닌 존재 자체의 뿌리가 흔들리는 불안이었습니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사람처럼 느꼈고, 아들 요나단이 다윗과 맹약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가 자신을 대적하여 공모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두려운 환상으로 가득 찬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점점 더 고립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 권력의 남용과 매수: 사울은 자신의 추종자들(대부분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밭과 포도원, 관직을 주어 충성을 사려 했다고 스스로 증언함으로써, 사무엘이 경고했던 왕의 모습을 실제로 행했음을 시인했습니다. 이는 다윗에게 모인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사울 왕국에서 이득을 얻지 못한 탈락자들)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 이성 상실과 불통: 사울은 아히멜렉 제사장의 진실되고 웅변적인 변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결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병적으로 흥분된 히스테리 상태에 있었으며, 합리적인 정상성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리더로서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도엑)만 곁에 두려 했으며, 이는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자멸의 길로 가게 했습니다.
- 인륜과 천륜을 어김: 사울은 아무런 심리나 정확한 죄 증거 없이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며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죄 없는 제사장들을 죽인 것은 인륜과 천륜을 어긴 만행이었습니다.
- 제사장 성읍의 진멸: 학살은 제사장 85명(“세마포 에봇 입은 자”)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놉 성읍의 남녀, 아이들, 젖먹는 자들뿐 아니라 소, 나귀, 양까지도 칼로 쳤습니다. 이는 이방 민족에게 적용하는 진멸(ḥerem) 방식과 같았으며, 사울이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아말렉 족속에게는 진멸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으면서도, 오히려 여호와의 제사장 성읍을 진멸하는 끔찍한 역설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 사울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제사장들을 죽이는 행위를 명령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신성 모독죄를 저질렀습니다.
→ 다윗의 거짓말이 낳은 결과? 아니다. 사울의 죄악이 저지른 결과이다.
회복해야 할 아둘람공동체
아둘람 굴 공동체의 신학적 성찰: 현대 교회를 위한 포용과 회복의 모델
현대 교회를 향한 아둘람의 교훈
이 장에서는 앞서 분석한 아둘람 공동체의 신학적 원리들을 오늘날 현대 교회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자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성공주의를 어떻게 극복하고 진정한 피난처가 될 수 있는지, 급진적 포용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상처 입은 공동체로서 어떻게 세상을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교훈을 탐구하는 것이 이 장의 목적입니다.
1) 피로사회 속 대안적 피난처로서의 교회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성취를 요구하는 ‘성공 지향적 사회’이자, 그로 인해 탈진하는 ‘피로사회’이며, 근원적인 ‘불안한 사회’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가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신앙의 이름으로 또 다른 경쟁과 성취를 부추기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아둘람 공동체는 교회가 세상의 성공 논리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번잡함과 성취 압박에서 벗어나 상처 입은 영혼이 참된 안식과 회복을 얻는 ‘영적 아둘람 동굴’이 되어야 합니다. 성공한 이들만을 환영하는 곳이 아니라, 실패하고 지친 이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찾아와 쉴 수 있는 대안적 피난처로서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 ‘묻지 않는 환대’를 실천하는 포용적 공동체
아둘람 공동체는 다양한 상처와 사연을 가진 이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과거를 묻거나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현대 교회 역시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배경을 따지지 않는 급진적 포용성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돌아온 아들’ 비유는 이러한 환대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큰아들은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눅 15:30)이라며 즉각적으로 분석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과거를 묻지 않고 그저 품에 안았습니다.
교회는 판단하고 분석하는 큰아들의 영성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를 환대하고 함께 아파하는 아버지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한 설교자의 외침처럼, “당신은 인생이 왜 그렇게 됐느냐 자꾸 코치코치 캐묻고… 이런 거 하지 마세요”라는 권면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러한 ‘묻지 않는 환대’의 영성을 회복할 때, 교회는 진정으로 세상의 상처를 품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3.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연대와 책임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실패를 끊임없이 남에게 전가하는 사울의 모습과 정반대의 자리에서 나타납니다. 사울의 광기로 놉의 제사장들이 학살당했을 때, 유일한 생존자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도망쳐 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사무엘상 22:22-23)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과오를 인정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 또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상처 입은 아비아달과 깊이 연대하며 그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완벽한 지도자가 이끄는 곳이 아니라, 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서로의 아픔을 책임지는 연대를 통해 세워집니다. 교회는 세상의 아픔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고 선포할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아둘람의 교훈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며, 이는 교회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금석이 됩니다.
🎯 핵심 메시지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하나님 나라는 온전한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온전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서로가 함께 위로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위로받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아둘람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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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흐름
1️⃣ 아둘람 동굴로 모인 사람들 (1-2절)
다윗이 피한 곳: 아둘람 동굴
- 압제를 받는 사람들
-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 총 400명
🔍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 이 세상의 주류가 아닌 사람들
-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
- 슬픈 마음이 있는 사람들
- 원통한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이 주님께 나아와서 하나님 나라를 세웁니다.
💭 생각해보기:
“하나님 나라는 온전한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온전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2️⃣ 아둘람 동굴의 영적 의미 (1절)
고대 근동에서 동굴의 이중적 의미:
영적 의미:
→ 예수 그리스도도 “무덤”에서 시작
- 십자가에서 죽으심
- 무덤에 계심
- 3일 만에 부활
-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됨
- 승리가 선포됨
아둘람 동굴의 사람들:
- 점점 평안을 알아가는 사람들
-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
- 새로운 소망과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는 사람들
3️⃣ 시편 57편과의 연결
시편 57:1-2 – 다윗의 간절한 기도
[시편 57:1-2, 새번역]
1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2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나를 위하여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시편 57:7-8 – 어려움 속 찬양
7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8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9 주님, 내가 만민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뭇 나라 가운데서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10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 너무 높아서 하늘에 이르고, 주님의 진실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11 하나님, 주님은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 핵심: 동굴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어둠을 깨우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4️⃣ 모압으로의 피신 (3-5절)
다윗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김
- 다윗: 요새에 머물러 있음
- 부모: 모압에서 안전하게 지냄
갓 선지자의 인도:
“요새에 머물러 있지 말고, 여기를 떠나서 유다 땅으로 들어가시오”
→ 다윗은 헤렛 수풀로 이동
5️⃣ 사울의 불안과 피해망상 (6-8절)
6️⃣ 도엑의 고발 (9-10절)
“제가 이새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놉으로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과 만날 때였습니다. 그 때에 아히멜렉이, 다윗이 해야 할 일을 주님께 여쭈어 보고 나서, 그에게 먹을 것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
7️⃣ 제사장들의 학살 (11-19절)
아히멜렉의 변호 (14-15절):
[사무엘상 22:14, 새번역] 그러자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서 다윗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구나 그는 임금님의 사위인 동시에 경호실장이며, 이 궁중에서 매우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
사울의 판결: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네 아버지의 온 집안도 다 죽어야 한다.”
경호병들의 반응:
주님의 제사장들에게 손을 대어 죽이는 것을 꺼려함
도엑의 만행:
역설적 상황:
- 블레셋과 아말렉 전쟁: 진멸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함
- 여호와의 제사장 성읍: 완전히 진멸함
→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만행
8️⃣ 아비아달의 생존과 다윗의 책임 (20-23절)
살아남은 아비아달: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피함
다윗의 반응 (22-23절):
나와 함께 있으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당신의 목숨도 노리고 있으니, 당신이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
🤔 질문: 이것이 정말 다윗의 잘못인가요?
❌ 아닙니다!
- 다윗의 거짓말 때문이 아님
- 모든 일은 사울의 죄악으로 저질러진 일
- 다윗의 잘못이 아니라 악인의 잘못
✅ 다윗의 태도:
-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
- 책임질 줄 아는 사람
- 상처 입은 치유자
💎 핵심 교훈
1. 아둘람 공동체가 되자
- 피로 사회
- 성공 지향적 사회
- 불안한 사회
교회의 역할:
- 버려진 자들을 받아들이는 곳
- 상처 입은 자들을 품는 곳
- 실패한 이들을 위로하는 곳
- 조건 없이 모두를 받아들이는 곳
- 묻지 않는 환대를 실천하는 곳
2. 탕자의 비유와의 연결
3.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다윗의 모습:
✅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
✅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사람
✅ 상처 입은 아비아달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
✅ 아비아달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사람
우리의 모습:
- “나와 함께 하면 당신은 안전할 것입니다”
- “내가 당신의 빚이 되어 주겠습니다”
- 서로 연대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공동체
4. 쓸모없어 보이는 이들의 변화
400명의 사람들:
- 처음: 압제받고, 빚지고, 억울한 사람들
- 나중: 훌륭한 군인들로 성장
→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 나에게 적용하기
Q1. 나는 누군가에게 “아둘람 공동체” 같은 존재인가요?
Q2. 내 주변에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버지의 영성)
□ 조건적으로 대하고 있다
□ 무조건적 사랑으로 품고 있다
Q3. 나도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나요?
🌟 오늘의 기도
우리 교회가 아둘람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상처 입은 이들, 버려진 이들, 실패한 이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큰아들의 영성이 아닌, 아버지의 영성으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게 하소서.
우리 모두가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서로 연대하고, 책임지며, 위로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 사랑하며
예수님 안에서 온전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나눔 질문
- “하나님 나라는 온전한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온전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말씀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 사울의 모습(불안, 피해망상, 권력 남용, 이성 상실)을 보며, 내 안에도 방치하면 위험한 감정이나 태도가 있는지 돌아봅시다.
-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안전한 사람인가요? 혹은 누가 나에게 그런 사람인가요?
- 우리 교회/공동체가 아둘람 공동체가 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찬양
아둘람 동굴은 무덤과 같은 곳이었지만,
바로 그곳에서 다윗의 왕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도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예수님 안에서 함께할 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도 아둘람 공동체의 소망을 품고 걸어가세요!


